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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봄 눈 시린 외전 1(공개) 본문

ㄴ쿠로켄

[쿠로켄]봄 눈 시린 외전 1(공개)

2018. 1. 2. 02:14




연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 두 집이 모두 서로의 물건으로 쌓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좁은 켄마의 투룸에는 점점 두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의 짐이 늘어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셔츠와 잠옷같이 편한 옷들이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인사도 늘었다. 쿠로오는 당연히 퇴근하면 당연하게 이 집으로 왔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회식을 끝나고 와서 많이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쿠로오는 큰 소리로 인사하지 않고 거의 중얼거리듯이 들어왔다. 그리고 부엌에 향하자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켄마가 눈을 뜨고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식탁에는 노트북과 타블렛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켄마의 오른손에는 타블렛 펜이 쥐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켄마의 품에는…에이키가 있었다.

어서와.

켄마도 속삭이듯이 화답했다. 쿠로오는 빙그레 미소를 지은 후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켄마의 이마에 손을 한 번 올리고 에이키의 이마에도 손을 올렸다. 켄마의 이마는 괜찮았고 에이키의 이마는 조금 뜨거웠다.

“언제부터 아팠어?”

“오후부터. 38도까지 갔다가 십…분 전에 37도.”

“자고 나서 좀 내려가면 좋겠는데.”

쿠로오가 에이키 이마를 쓰다듬다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켄마가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회식은 잘 끝났어?” 켄마의 질문에 쿠로오가 식탁 의자를 끌어와 켄마 주변에 앉았다.

“응, 별 문제 없이 1차만 하고 왔지.”

“그래도 늦었네.”

그 말에 쿠로오가 웃었다. 오늘 회식은 1차만 하고 갈 거라고 금방 갈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쿠로오에게 켄마가 안 그럴걸? 하고 답장했던 게 떠올라서 그랬다. “응, 켄마 말대로.” 켄마도 따라서 살포시 웃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걱정 말고 먼저 자.”

“너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쿠로오는 투덜거리며 다시 일어나 켄마 품에 있던 에이키를 조심히 옮겨 들었다. 에이키가 움찔거리며 눈을 살짝 떴다가 쿠로오를 확인하고 다시 스르르 잠에 들었다. 아직 서늘한 기운이 옷에 묻어있는지 에이키는 쿠로오 품에 얼굴을 몇 번 비볐다. 착하다, 착하다. 쿠로오는 아이를 달래며 자세를 다잡았다. 곧 쿠로오에게 처음부터 안겨서 잔 것처럼 안정적인 자세가 된 걸 보고 켄마는 눈을 깜빡이고 다시 노트북에 집중했다. 옆에 앉은 쿠로오가 아이의 등을 느리게 도닥였다. 잘 되어 가? 켄마가 으음-하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했던 시간 내로는 될 거 같아. 켄마의 마감시간은 늘 마감보다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앞서 있었다. 그 정도의 여유를 두고 작업해야 수정분이 나와도 마감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에이키만 내일 아침 열 떨어지면 되겠네.”

“…그거 말인데.”

켄마가 툭툭 펜을 치다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은 어딘가 석연찮은 게 있다는 것 같아서 쿠로오는 켄마를 따라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살짝 찡그리더니 곧 의문이 조금 남는다는 목소리로

“에이키, 꾀병 같아.”

말했다. 흐음, 쿠로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두었다. 왜 갑자기 꾀병을 부리는 건지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유치원 때문에?”

쿠로오의 질문에 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옮겨야 할 거 같아.”

“일단 내일 이야기하고 나서 결정하자.”

쿠로오는 얼마나 켄마가 유치원을 심사숙고해서 골랐는지 알고 있었다. 집과 30분 이내의 거리에 아이들 뛰어놀기 좋고 많은 아이들이 한 반에 들어가지 않는 유치원. 거기다 가끔은 늦게까지 하는 유치원. 까다로운 조건들밖에 없었는데도 켄마는 어떻게 또 그런 조건들로 이뤄진 최적의 유치원을 찾았다. 뭐, 그래. 유치원을 다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왜 에이키가 유치원에 가기 싫어진 거냐는 거였다. 4월부터 유치원에 갈 거란 말에 가방을 매고 계속 빙글빙글 거실을 돌고 다니던 아이였다. 한동안 잘 다니다가 갑자기 여름 방학을 앞두고 이러니까 쿠로오도 켄마도 영문을 몰랐다. “내일….” 켄마가 한숨이 섞인 말을 꺼냈다.

“응, 그러니까 일단 자자.”

내일도 열이 내리지 않으면 아침부터 병원 가고 해야 하니까.

쿠로오는 이마를 내밀어 켄마의 이마에 붙였다. 켄마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입을 앙다물었다. 애매해서 고민할 때면 늘 그런 표정을 짓는 걸 알게 되어서 조용히 쿠로오는 켄마의 안경 가운데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사르륵 안경다리를 따라 끌려나왔다. 검은 머리. 최근에 너무 길어서 덥수룩해보인다고 해 다시 예전 정도의 길이로 머리를 다듬은 켄마의 머리는 다시 또 길고 있었다. 머리가 너무 빨리 자라서 다시 또 미용실에 가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끌려나왔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버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쿠로오는 멍하니 웃었다. 그런 쿠로오를 켄마는 못 본 채했다.

안경을 노트북 옆에 두고 쿠로오가 노트북을 닫았다.

“자고 나서 내일 하자. 출근하면서 깨워줄게.”

이렇게 다정하게 권유하면 아무리 켄마라도 어쩔 수 없었다. 쿠로오에게서 에이키를 건네받고 “쿠로, 옷 갈아입어.” 라고 대답해야만 했다. 쿠로오가 얼른 문을 열어주고 켄마와 에이키가 침대에 자리를 잡는 걸 바라보았다. 그 후에 제 옷을 갈아입고 누워 여전히 심란해하는 켄마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일, 물어보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말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 “응….” 켄마는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부엌에서 쿠로오가 아침을 만들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에이키였다. 켄마보다도 늘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서 쿠로오는 놀라지 않고 “잘 잤어?”라고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응….” 에이키가 영 기운이 없어보여서 얼른 쿠로오는 무릎을 굽혀 아이 이마에 손을 댔다.

“테츠.”

“응?”

“에이키, 아파…. 안아주세요.”

에이키는 드물게 칭얼대며 두 팔을 벌렸다. 쿠로오는 얼른 아이를 안고 엉덩이를 한 손으로 받쳤다. 찡얼대는 소리가 가슴팍에서 들렸다. 응석이 많은 편이 아닌 아이다보니 이럴 때면 괜히 짠해지는 게 있었다. 쿠로오는 가스 불을 낮추고 아이를 제대로 안았다. 둥기둥기, 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아이를 달랬다. “에이키, 체온 재볼까?” 아이가 조금 움찔거리긴 했지만 별말 없이 귀에 체온계를 넣는 걸 허락했다. 잠시 후 체온계에서 삑 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어딘가 불안한 기색으로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흐음.”

숫자를 바라보던 쿠로오는 저를 올려다보는 에이키를 보고 눈썹을 슬쩍 내렸다. “열은 없는데….” 그렇게 말하자마자 아이는 입술을 꾹 깨물고 조용히 쿠로오 품에 숨었다. 절대로 내릴 의사가 없다고 온몸으로 표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디가 아픈 걸 수도 있으니까 켄마에게도 물어보자.”

그런 에이키를 꼭 안아주면서 쿠로오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던 대답이었다는 것처럼 에이키가 “응….”이라고 얼른 대답했다. 그게 귀엽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서 토닥이기만 했다.

“에이키 유치원 못 갈 수도 있겠다. 어떡하지.”

쿠로오는 슬쩍. 그렇게 물었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괜찮아….” 왠지 대답이 시원찮았다. 정말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에이키…여기 있었구나.”

어두운 표정의 쿠로오를 보고 켄마가 고개를 기울였다. 쿠로오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쿠로오가 고개를 저었다. 켄마가 의자에 앉아서 팔을 벌리니 쿠로오가 에이키에게 말을 걸었다. “켄마에게 잠깐 가자.” 쿠로오의 말에 에이키가 고개를 돌려 켄마를 보고 팔을 내밀었다. “켄…마.” 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에이키는 켄마에게 안겼다. 어딘가 물에 젖은 듯한 목소리였다.

“아직 아파?”

켄마가 에이키와 쿠로오 둘 다에게 물었다. 에이키는 대답이 없었고 쿠로오는 잠시 뒷목을 긁적였다. “에이키…아파요.” 에이키는 얼른 자기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쿠로오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선수 친 느낌이었다. 켄마는 그런 아이를 잠시 보았다가 고개를 들어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열은 없어.”

에이키는 그 말에 괜히 찡얼대는 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를 듣고 쿠로오와 켄마는 어제 밤과 같이 조금 심란해졌다. 켄마는 입술을 앙다물고 잠시 생각을 했다. 쿠로오는 그런 켄마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뒤를 돌아 다시 불을 높였다. 자글자글하는 소리와 함께 양파의 단내가 부엌에 퍼졌다.

“그럼…오늘은 유치원 쉬자.”

켄마의 말에 에이키가 “응….” 하고 얼른 대답했다. 에이키의 이마에 입술로 꾹 누른 후 “선생님께 오늘 못 간다고 전화하고 올게.”라고 말했다.

켄마가 전화를 하러 가는 사이 에이키는 원래 제가 앉던 자리에 옮겨 앉았다. 안 가게 되었으니 좋아하려나. 쿠로오가 고개를 돌려 보자 에이키는 영 좋아하는 표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안해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꾀병이라도 좋았다. 어차피 유치원은 꼬박꼬박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좀 더 있었다면 곤란했겠지만 아직은 배우는 것보다는 제가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둘이었다.

“네, 오늘은 그래서 유치원을 쉬어야 할 것 같네요.”

켄마의 통화하는 소리만 들으며 에이키는 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파감자볶음을 접시에 옮겨 담아 식탁에 내려놓는 소리가 나고도 한참 후에야 켄마는 전화를 끊었다. “…뭐래?” 계속 켄마 눈치만 살피는 에이키를 대신해서 쿠로오가 켄마에게 질문했다.

“에이키 푹 쉬고 건강해지면 다시 유치원 오라고 하시네.”

“그렇구나. 그럼 오늘 에이키는 쉬네.”

쿠로오가 수저까지 내려놓았다. 앞치마를 벗어 제 옆 의자에 걸어두고 제 자리에 앉았다. 켄마 맞은편, 에이키의 왼쪽에 앉아서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는 인사로 식사를 시작해도 되는 걸 알렸다.

“그리고 오늘 테츠로는 포상 휴가입니다.”

에이키는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기울였다. 휴가? “열심히 일해서 오늘은 회사 안 가도 된다는 뜻.”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는 그런 에이키를 보고 있다가 다시 켄마를 바라보았다.

“켄마는 어떻게 되나요?”

“…….”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 한쪽 눈만 찡그린 채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쿠로오는 그저 웃고 있었다. 젓가락을 물고 잠시 망설이던 켄마가 대답했다.

“하루 정도는 괜찮아.”

“그럼 우리 오늘 모두 다 쉬네.”

쿠로오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늘 이런 상황에는 갑작스러운 걸 발표할 때가 많아 켄마는 벌써부터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밥을 먹었다.

“그럼 오늘은 에이키가 가고 싶은 곳으로 소풍 갈까?”

“정…말?”

“응, 에이키, 저번에 돌고래 보러가고 싶다고 했지?”

“…거기 쿠로 회사 근처잖아.”

“회사 근처니까 더 조용하지. 걱정하지 마.”

쿠로오는 얼른 켄마가 가타부타 반론을 붙이기 전에 빠르게 차단했다. 벌써 반년도 더 전의 스캔들을 아직도 걱정하고 있는 게 참 켄마답다고 생각하면서도 쿠로오는 그게 또 매력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에이키는 가고 싶어?”

“…응.”

에이키는 대답하고도 자꾸 켄마의 눈치를 살폈다. 꾀병을 부리고 유치원도 안 간 주제에 놀러가고 싶다고 하려니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누가 이런 아이를 이제 두 달 후면 다섯 살이 된다고 믿을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에이키가 어른스럽고 철이 빨리 들었다고 하지만 쿠로오는 그런 점이 마음 아팠다. 쿠로오는 켄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건 켄마도 마찬가지다. 정확히는 켄마가 쿠로오보다 에이키의 그런 점을 더 신경 썼다.

“…언제 가려고.”

그래서 켄마는 또 에이키에게 지고 말았다. 켄마가 뭘 꾸미는 거냐는 눈빛으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쿠로오는 모른 척 어깨를 으쓱이고 “지금이 여덟시니까…준비해서 10시에 나가자.” 즉흥적으로 정한 약속인데도 불구하고 꽤 쿠로오는 생각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도시락도 싸야 하고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쿠로오는 벌써 도시락의 반찬을 정하고 있었다. 켄마는 한숨을 쉬었다. 에이키도 참 당황스럽겠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문어소시지 먹고 시퍼….”

누구 아들이었는지 깜빡했던 모양이었다. 켄마는 한숨을 다시 쉬었다.

“일단 밥부터 다 먹어야 해, 에이키.”

“진짜로 그럼 가는 거야?”

“그렇답니다. 켄마도 괜찮다고 하니까 갔다 오자.”

쿠로오는 아이를 능숙하게 달랬다. 에이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기운을 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혼자서 그릇도 싱크대에 두고 이도 닦고 옷도 갈아입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유치원 가방을 매고 나왔다가 얼른 가방을 벗어던졌다. 가방이 떨어지는 소리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걸 또 쿠로오가 잘 보고 “에이키, 벌써 버릇이 들었구나? 나도 방금 회사 가는 줄 알고 가방을 들었지 뭐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켄마는 그런 쿠로오를 따라 가만히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비록 에이키가 유치원에 들고갈 작은 물병밖에 얼린 게 없었지만 어차피 야외를 가는 것도 아니고 실내의 아쿠아리움에선 물을 많이 먹을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거기도 카페가 있고 하니까. 사실 도시락도 필요 없어 보였다.

“필요 없긴, 오붓한 소풍엔 역시 도시락이지.”

쿠로오는 문어 소시지를 들고 설파했다. 보나마나 그렇게 생각했을 줄 알았어. 사먹는 게 편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도시락도 좋잖아. (물론 이 이야기는 늘 쿠로오 본인이 할 때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쿠로오는 카페테리아에서 에이키의 입도 들고 온 냅킨으로 닦아주었다.

“그럼 앞으로 도시락 소풍을 하고 싶으면 쿠로가 해.”

“…뭐, 당연히 내가 할 거긴 한데 왠지 말투가 그렇다.”

쿠로오는 웃으면서 켄마의 부루퉁한 말을 지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키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계속 제 주변의 유리를 바라보았다. 식당 내벽마저도 물고기가 다니는 걸 볼 수 있는 하나의 수족관 테마였다. “잘 해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꼭 오고 싶었지.”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또 에이키가 흘린 케첩을 닦아주었다.

“켄마, 테츠, 저기!”

“우와, 큰 물고기네. 그치?”

쿠로오는 얼른 아이를 따라 아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닮은 둘이 붙어서 어딘가를 바라보며 같이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켄마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자 얼른 폰을 들었다. 화면 가득히 잡힌 건 사랑해왔던 사람과 사랑해오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둘이 가득히 잡혔다. 찰칵.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찍힌 사진인데도 쿠로오는 그 소리가 들린 것처럼 그 타이밍에 켄마를 바라보았다.

“켄마도 막상 나오니까 즐겁구나?”

“…아이스크림 사올게.”

“부끄러워하긴.”

그렇게 말하고 쿠로오는 켄마를 혼자 보냈다. 잠시 혼자 아이스크림을 사러 떠나는 켄마를 바라보던 쿠로오가 고개를 살짝 돌려 에이키를 바라봤다. 에이키는 여전히 천장을 유유히 지나가는 가오리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에이키.”

그런 에이키의 두 눈이 쿠로오에게 돌아왔다. 동그란 눈에는 쿠로오가 가득히 담겨있었다. 쿠로오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 모든 걸 위해 포석을 깔아둔 거였다. 에이키가 먹고 싶다고 했던 문어소시지도 에이키가 보고 싶다고 했던 거대 가오리와 돌고래도 테츠와 켄마와 함께 놀고 싶다는 것도.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역시나 에이키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입술을 내민 모습이 말하기 싫어하는 얼굴이었지만 쿠로오는 가만히 기다렸다.

“아니….”

“그럼 그냥 가기 싫어?”

“…….”

에이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름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건 확실했다. 쿠로오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에이키는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뭔가를 말하려고 뻐끔거리다가 다시 어두운 표정만 지었다.

“왜 가기 싫은지 말하기 힘들면 지금 말하지 않아도 돼.”

괴로워하는 걸 왜 괴로워하는지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쿠로오는 지금이 괴로운 건지만 궁금했던 거였다. “켄마와 내가 궁금한 건 에이키가 계속 이 유치원에 가고 싶은지가 궁금한 거니까.” 괴로운데 참으면서 다닐 것도 아니었고, 쿠로오는 그런 걸 매우 싫어했다. 그건 켄마도 마찬가지였다. “켄마와 나는 에이키 말대로 할 거야. 늘 그래왔듯이.” ‘늘’이라는 표현에 에이키는 고개를 들었다.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쿠로오의 눈은 거짓말을 하는 눈이 아니었다. 꼭 눈을 보지 않아도 에이키는 알고 있었다. 켄마와 쿠로오는 제 말을 절대 허투루 듣는 사람은 아니었다. 늘 제게 말해준 걸 지키려고 노력하고 안 되는 건 왜 안 되는 지 설명해주었다. 가끔 떼를 써도 에이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그거라면 모른 척 들어주었다.

“…가기…싫어요.”

“응, 알았어.”

그래서 에이키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쿠로오는 그걸 받아주었다. “이리 와, 에이키.” 거기다가 두 팔을 벌려 용기를 내준 에이키를 안아주었다. 에이키도 두 팔을 벌려 쿠로오의 등을 꼭 잡았다.

“…….”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사오던 켄마가 조용히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소리가 나지 않지만 켄마의 저 묘한 눈빛이 느껴져서 쿠로오는 또 절묘한 타이밍에 켄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는 거야?” 그렇게 물어봐도 뭐라고 대답할 길이 없었다. “음…직감?” 그렇게 말하고 쿠로오는 아이스크림을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켄마는 건네지 않았다. 대신 에이키에게 한 입 먹였다. “맛있어?” 켄마의 질문에 “응!”이라고 에이키가 크게 대답했다.

“이제 좀 나았어?”

켄마의 말에 에이키가 흡, 하고 놀랐다. 켄마는 그런 에이키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쿠로오를 보고도 웃었다. “에이키가 한 방 먹었네.” 쿠로오도 웃었다. “그게 뭐야?” 에이키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가 뭔가 당했다는 건 안 모양이었다. 입이 툭 튀어나와선 영락없이 삐졌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참, 아까 조금 있다가 펭귄 밥 주는 거 구경할 수 있다는데, 갈래?”

분명히 삐져있었는데도 에이키는 또 눈을 반짝이며 켄마를 바라보았다.

“갈래.”

에이키의 말에 쿠로오는 얼른 팸플릿을 다시 확인했다. 다행히 여기서 꽤 멀지는 않았다.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될 정도의 거리였다.





펭귄도 보고 수달도 보고 기념품 가게에서 인형도 세 개를 고른 에이키는 하나는 가방에 하나는 제 품에 하나는 쿠로오에게 나눠서 들고 왔다. 하루 종일 뛰어다녔는데 집에서도 아쿠아리움 안에서 경험했던 걸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리느라 바빴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잘 때마저 그 인형 셋과 같이 자겠다고 하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았을까.”

라고 켄마가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서 작업하며 말했다. 쿠로오도 고심하는 소리를 내고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뭐, 어렸을 때는 뭐든 재밌잖아. 켄마도 나도 집 밖에서 배구만 해도 즐거웠는걸.”

“…일단 유치원은 나가지 않고 싶대.”

“그렇구나.”

켄마가 안경을 벗고 잠시 미간을 손가락으로 주물렀다. 밤에 어른들끼리만 깨어있던 이유는 시시했지만 중요한 문제였다. 켄마는 안경을 내려놓은 맨얼굴로 쿠로오를 응시했다. 쿠로오도 아까까지의 장난스러웠던 얼굴은 사라지고 가벼운 고민과 한없이 무거운 문제 해결방법을 논하고 싶어 했다.

“유치원을 그만 두는 건 쉬워.”

여름방학이 가까워졌고 아이가 싫다는 곳을 강제로 다니게 하는 건 아이를 생각하는 보호자라면 그 누구라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좀 더 강하게 말하자면, 유치원은 어디까지나 돈을 내지 않으면 가지 않는 거였다.

“문제는 다른 유치원을 어떻게 구하느냐야.”

켄마는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아무리 유치원이 선택사항이라 할지라도 배워야하는 건 있었다. 아이를 내버려두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였지만 켄마 스스로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식이라면 켄마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겠지만 그런 걸 배우려고 면역력도 성인에 비해서 턱없이 모자라 매 전염병이 도는 시기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걸리는 곳에 다니라고 하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래서 어디로 보낼까’였다. 에이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까지만 보낸다고 할지라도 여름방학 이후의 학기에 중도입학이 가능한 유치원이 많지는 않았다.

“이미 근처는 다 조건에서부터 걸러졌었고.”

쿠로오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규칙을 완화한다하더라도 가장 큰 문제인 ‘중도입학’이 걸렸다. 그렇다고 사립을 보내기엔 돈도 돈이지만 켄마의 교육관과도 또 맞지 않았다. 아카아시처럼 엘리트를 키우고 싶다면 주저하진 않겠지만 켄마는 무조건 최강을 키우고 싶은 건 아니었다.

켄마는 아쿠아리움에서 즐겁게 놀던 에이키를 떠올렸다. 저건 상어야, 상어인데 뾰족한 게 없어. 저건 물고기 같은 상어야? 혼자서 궁금해 하고 그걸 어떻게든 해석하기 위해 안내판을 찾고 읽어달라고 부탁하던 아이였다. 근처 다른 유치원 현장학습에 은근히 끼어들어 설명도 듣던….

“유치원.”

“응?”

“있어.”

“있어?”

“확실하지 않지만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켄마는 쿠로오를 마주했다. 쿠로오는 이해하지 못하고 켄마가 답을 주기만을 기다렸다. 유치원. 현장학습. 쿠로오 회사 근처의 아쿠아리움. 켄마는 쿠로오를 두 눈에 가득히 담았다. 설마. 쿠로오는 열심히 오늘의 일들과 켄마의 두 눈에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사내 유치원 생각하는 거야?”

“거기면 중도입학도 되지 않아?”

“아니, 그렇게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일단….”

에이키랑 나랑 법적인 관계가 없어서 안 돼.

칫. 켄마가 혀를 찼다. 가장 기본적인 걸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도 이걸 답이라고 내다니. 가끔 켄마는 하나에 빠져있으면 다른 걸 살피지 못할 때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잠깐만, 쿠로오 머리 전구가 반짝였다.

“…혹시 방금 청혼한 거야…?”

그 말에 켄마가 도리어 당황했다. 전혀 이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정확히는 이해타산을 따진 계산에 가까운데….” 켄마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쿠로오는 그게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해도 너는 괜찮냐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쿠로오는 조금 비참해지긴 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의 순서를 생각하면 사실 이 시점에서 청혼이라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쿠로오는 켄마의 긍정적인 대답을 기다렸다. 켄마는 고개를 숙였다. 고심 끝에 말했다.

“축하해, 쿠로오. 에이키만 설득하면 쿠로오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제시한 조건이 엄청 큰 벽이잖아!”

에이키에게 코즈메가 아니라 쿠로오가 되라고 하면 분명 펑펑 울 걸? 절대로 쿠로오는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해.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뒤로 숨긴 손에 땀이 나서 주먹을 쥐었다. 켄마는 쿠로오에게 사실 그것 말고도 남은 건 많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쿠로오 테츠로가 성인이라 할지라도 이런 문제를 쿠로오 본인의 부모님께 일언반구도 없이 해결할 수는 없는 거였다. 회사 동료들에게도, 적어도 사내 유치원 관리 담당자에게라도 어떻게 말을 해야 했다. 예전, 농담 삼아 떡밥을 던진다는 둥 어쩐다는 둥 했지만 정말로 이번엔 크게 매스컴에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게 큰 벽일까? 이것들은 괜찮아? 오히려 이쪽이 네게는 더 힘들지도 모르는데도? 켄마는 묻고 싶었다. 에이키를 설득하는 것까지는 켄마의 지휘 아래 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는? 그 외는 켄마가 할 수 있는 건 최선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쿠로오가 채워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도 네게는 이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한다면….

“에이키에겐 비장의 카드가 있어.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아.”

“…뭐, 여차하면 내가 코즈메가 되면 되는 거고.”

“그건 안 돼. 일적으로는 너 하나만 바꾸면 되는 것 같겠지만 네 이름이 신문에 나면서 에이키 때문에 네가 이상한 소문에 시달릴 지도 몰라.”

“애 딸린 아빠에게 끌렸다고 말하기엔 에이키 사진만 봐도 난데요, 뭘.”

그야 그렇지만. 켄마는 그래도 굳이 쿠로오의 이미지를 깎아먹고 싶지는 않았다. 저야 쿠로오 켄마가 되든, 코즈메 켄마로 살든 앞으로의 명의 변경의 문제만 있을 뿐이지만 쿠로오 테츠로는 아니니까. 운동 선수에게는 이미지도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일단…최대한 네가 성을 바꾸는 건 피하자.”

“켄마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러자.”

일단 쿠로오는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고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차분히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일단 사내 유치원 운영 방침이나 규칙에 대해서는 알아올게.”

그 이후에, 에이키에게 어떻게 말할지 혹은 정말로 바꿀 건지 정하자. 쿠로오가 하품을 하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일단 유치원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답을 정한 후에 결정하자는 의견에 켄마는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쿠로는 말야.” 그리고 그 생각을 말로 꺼냈다.

“기회를 놓치는 법이 많구나.”

“무슨 뜻인지…알겠는데. 음….”

쿠로오가 턱 밑에 제 손가락을 올리고 말을 다듬었다.

“기회는 잡고 싶지만 성급하게 해치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아무리 우리가 바꾸니 마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성이라는 건 가족의 개념이고 이걸 바꾼다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우린 가족이라는 거니까. 난 우리가 완전한 가족이 되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성급하게 일을 그르치고 싶진 않아. 쿠로오라면 이렇게 생각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답변들을 쿠로오 본인에게서 한 번 더 들었다. 그런 점이 널 더 좋게 만드는 거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싫어.”

그리고 모든 걸 고려한 결과에 따라 유치원을 옮기기로 결정내린 후, 에이키에게 질문을 했을 때의 답변이었다. 펭귄 인형을 꼭 안고 있던 에이키가 그렇게 빠르고 단호하게 답을 내리는 건 요 근래 들어선 오랜만이었다.

“왜 싫어?”

거의 울려고 하는 쿠로오를 대신해 켄마가 질문했다. 그 말에 에이키가 우물쭈물 못하더니 쿠로오를 노려보고는 입을 내밀었다.

“나는 코즈메 에이키잖아.”

그 말은 쿠로오를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분명 그건 아니었는데도 쿠로오는 가슴이 아파서 더 이상은 무리였다. 순식간에 우울해진 두 사람 사이에 있게 된 켄마는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이제 켄마도 쿠로오 켄마가 될 건데도?”

선수필승. 비장의 카드를 재빨리 꺼내놓은 켄마의 수에 “엑?”하고 놀라는 반응을 두 사람이 동시에 보였다. 쿠로오는 감동에 빠진 눈으로 반짝반짝 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키는 마치 켄마가 배신이라도 한 것 같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켄마 이제 코즈메 안 할 거야?” 성은 청팀 홍팀 나누는 게 아닌데 왠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 발언이었다.

“켄마, 이제 에이키보다 테츠가 더 조아?”

에이키의 목소리는 마치 심야드라마를 따라하는 아이 같았다. 역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켄마는 어깨에 힘이 조금 빠졌다. “켄마아….” 라는 소리와 함께 제 뒤통수가 조금 따가웠지만 그건 일단 나중의 일이었다.

“어느 누가 더 좋아서 그러는 건 아냐.”

“그럼 왜 갑자기 코즈메 안 해?”

“그건….”

네 유치원 때문이라고 하면 에이키도 눈치가 빤하니 그럼 유치원 계속 다니겠다고 말할 것 같았다. 싫다고 말한 아이에게 눈치를 주는 것밖에 되지 않으면 그것도 많이 곤란했다. 켄마는 곁눈질로 제 뒤의 쿠로오를 살폈다.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한 것도 없지는 않았다. 에이키는 코즈메 에이키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쿠로오 테츠로라는 사람을 에이키의 가족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잡한 기분에 먼저 말할 수 없어 언제부턴가 한 손은 에이키를 받치고 늘 한 손은 켄마를 위해 남겨주는 사람을 믿어보고 싶었다.

“…에이키를 좋아하는 만큼 테츠도 좋아하는 거야.”

켄마도 마음 같아서는 좀 더 풀어서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켄마 스스로도 왜 그렇게 요즘 약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불과 반 년 전의 사람이라면 유치원 하나 때문에 성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켄마도 뭐라고 정리를 못한 채로 말을 하니 마음속에서 괜히 뭔가가 울컥했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던 전적이 있어서, 켄마는 어떻게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에이키는 그런 켄마를 보다가 켄마의 어깨를 감싸는 쿠로오도 올려다보았다. 쿠로오를 보는 얼굴이 뭘 뺐긴 얼굴 같기도 하고 왜 자기가 질투를 하는 건지 혼란해하는 것 같은 얼굴 같기도 했다. 에이키는 켄마의 손을 건드리고 제 쪽으로 당겨서 잡았다.

“…켄마가 쿠로오가 되면 나도…그럼 쿠로오 할래.”

그리고 쿠로오의 손도 끌어 당겼다. “그래도 역시 테츠 미워.” 왜 미운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미웠다. 켄마가 자기의 심정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 것과 에이키가 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쿠로오는 그 두 개를 다 알 것 같았다.

“쿠로오 켄마…이상해.”

에이키가 자꾸 켄마를 놀렸다. “쿠로오 에이키도 이상해.” 괜히 신경질을 내며 쿠로오에게 그 화를 풀었다. “테츠가 싫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아이가 인상을 썼다. 입을 내밀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테츠가 싫은 건 아닌데 테츠 싫어. 켄마는 좋지만 미워.”

눈물을 벅벅 닦고 에이키는 그 싫다는 테츠에게 달려들어 품에 안겼다. 쿠로오는 자기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 같은 감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제게 안겨서는 제가 싫다고 우는 아이를 토닥였다. 멍하니 그 장면만 바라보는 켄마를 불러 한쪽 어깨엔 에이키를, 다른 어깨엔 켄마를 꼭 안아주었다. 거의 둘을 한꺼번에 품 안에 붙잡으려고 하는 꼴이 되었다.

“원래 가족이라고 해서 늘 좋은 건 아냐. 우린 또 늦게 가족이 되었잖아. 다른 가족들보다 헤매는 것도 많고 부딪히는 것도 많을 거고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생길 거야. 그래도 그럴 때마다 내가 더 노력할게.”

그리고 쿠로오는 켄마에게서 바로 떨어지고 에이키도 소파에 다시 내려놓았다. 울 줄 알았는데 쿠로오는 되게 깔끔하게 웃고만 있었다.

“아직 법적으로는 남이지만 그래도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쿠로오의 또 갑작스러운 제안에 켄마와 에이키가 고개를 돌려 서로와 시선을 맞췄다. 에이키는 웃었다. “케이크 먹을래.” “케이크는 밥이 아니죠.” 쿠로오와 에이키의 흐름에 또 켄마가 끌려가는 꼴이었다.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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