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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봄 눈 시린 4 본문

ㄴ쿠로켄

[쿠로켄]봄 눈 시린 4

2017. 4. 10. 01:30




“요즘 쿠로오, 꽤 괜찮네.”

“감사합니다.”

쿠로오가 웃으면서 까딱 고개를 숙였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연신 웃고 있었다. 요 근래 들어 쿠로오의 컨디션이 날이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블록뿐만 아니라 원래 특기였던 리시브도 빛을 발했다. 이번에는 팀 목표를 좀 높게 잡아도 되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는 감독의 말을 다른 선수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쿠로오는 그럴 때마다 웃었다. 가장된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래서 기뻐서 웃는 미소였다. 가끔 보쿠토만 삐뚜름한 시선을 보냈지만 쿠로오도 보쿠토도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요즘 컨디션이 좋아 보이니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감독의 말에 쿠로오는 그러겠노라 말하며 눈을 접었다가 폈다. 그리고 잠시 누군가를 떠올리고 다시 픽 웃었다. “좋아,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합시다.” 감독의 끝을 알리는 박수 두어 번에 모두들 감독에게로 모였다. 잠시간의 브리핑 끝에 구호를 크게 외치고 모두 움직였다. 제각기 샤워를 하고 제각기 옷을 갈아입고 훈련을 마무리 짓는 선수들 틈에서 쿠로오도 느지막이 늦장을 부리고 있었다.

“요즘 기분 좋아 보이네.”

그리고 드디어 보쿠토가 입이 나온 채로 쿠로오에게 따지듯 물었다. 쿠로오는 아직도 목에 걸어둔 수건으로 제 머리를 잠시 탈탈 털었다. 보쿠토는 의외로 얌전히 쿠로오가 대꾸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뭐, 나름.”

그렇게 괜히 퉁명스레 던지고도 쿠로오는 말끝에 어딘가 산뜻한 기분을 남겼다. 보쿠토는 그런데도 웃지 않았다. 여전히 무섭게 노려보며 쿠로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이 있지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사람 만나?”

쿠로오는 옆을 바라보았다. 보쿠토가 여전히 정색하며 단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쿠로오도 입을 다물었다. 눈동자 안에서 분노인지 미련인지 모를 것이 뿜어져 나왔다. 보쿠토는 눈매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었다.

“만나지 마.”

“누군줄 알고?”

“누구든 간에. 난 반대야. 지금은 아냐.”

쿠로오는 다시 고개를 돌려 보쿠토를 무시한 채로 옷을 갈아입었다.

“너 지금은 좋고 행복하고 그렇지만 감당할 수 있겠어?”

보쿠토의 말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엉망진창인 말이었지만 한동안 피폐하다는 단어로밖에 설명하지 못했던, 나락에 빠진 쿠로오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었다는 걸 아는 쿠로오에겐 그게 그 세월 전부를 가리키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쿠로오의 표정은 아까와 달리 굳어버렸다. 이제는 오히려 안달난 사람이 보쿠토였다. “쿠로오.” 쿠로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보쿠토.”

하나하나 단추를 꿰던 쿠로오가 결국은 캐비닛을 닫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단호하게 보고 있는 노란 눈은 완전 다른 성격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또 그 아이를 떠올리게도 했다. 쿠로오는 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내가 선택한 거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이 문제는 내가 감당하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쿠로오는 결국 고르고 골라 이 말부터 먼저 꺼냈다. 역시나 보쿠토의 표정이 무너졌다. 참, 순진한 녀석이라니까. 그래서 이렇게 오래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거라는 생각에 쿠로오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너도 알겠지만 아카아시가 워낙 스파르타라서.”

“아카아시가 널 곤란하게 했어?”

쿠로오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가 대답했다. “아니.” 사실은 곤란한 것 이상으로 혼란스러웠고 목을 죄었지만 뭔가 그렇다고 ‘곤란하게 했다’고 말하기에는 쿠로오 스스로도 복잡미묘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세모꼴로 변하는 보쿠토의 눈에 쿠로오는 웃겨서 너스레를 떨 듯 손을 허공에 내저었다.

“아카아시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냐. 걔가 뭐 이유 없이 남을 곤란하게 하고 그러는 애도 아닌 거 알면서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그야 쿠로오, 네가 내 친구니까.”

그 말에 결국 쿠로오는 울컥했다. 입을 다물고 인상을 썼다. 쿠로오를 보는 보쿠토의 시선은 여전히 올곧았다. 쿠로오는 결국 시선을 대각선 아래를 바라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손을 올려 제 얼굴 반을 덮었다. 올곧게 저를 봐주는 좋은 친구였다. 그 날 이후로 힘들어하던 쿠로오를, 왜 힘들어하는지 묻지도 않고 묵묵히 달래주고 다시 일어나게 해준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랬다. 쿠로오는 그런 친구에게 그런데 이유를 여전히 말해줄 수가 없었다. 누구를 만나는지도 심지어 말할 수 없었다.

“…고맙다, 보쿠토.”

진심을 눌러 담아 그 말을 전달한다. 보쿠토도 인상을 썼다. 꽁한 표정으로 뭔가 말하고 싶지만 굳이 말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선 보쿠토에게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시익 웃어보였다. 쿠로오는 가방을 매고 겉옷을 정리했다.

“요즘 나, 밤에 잘 자.”

“…어?”

“아직 소파에서 자지만 그래도 내일 생각하면서 잘 자.”

그렇게 말하면서 쿠로오는 눈을 살풋 접었다. 보쿠토는 알고 있었다. 쿠로오가 어느 날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걸, 그리고 사실은 불면증이 아니라 꾸고 싶지 않은 꿈을 꾸기 때문에 잠을 안 잔다는 것도 한번 쿠로오네 집에서 잤다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는 쿠로오는 오랜만이고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진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누군지는 여전히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

“아직 아카아시에게 안 물어봤어?”

“그거 진심으로 묻는 거 아니지?”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는 말에 쿠로오가 결국 크게 웃었다. 은근히 너 그런 거는 눈치가 빠르다니까. 그렇게 말하다가 쿠로오는 정말로 다 털어낸 미소를 지었다. “내 입으로는 아직 말 못하겠다. 그 시간까지 지겨우면 괜찮으니까 아카아시에게 물어봐. 나는 상관없어.” 그러고는 손을 흔들었다. “나 간다.” 그러니까 보쿠토가 “조금만 기다려, 태워줄게.”라고 말했다. 하지만 쿠로오는 손을 흔들어서 나갔다. 아니,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왔다. 눈이 뭔가를 깜빡했다는 것처럼 크게 뜬 채로.

“야, 그럼 나 마트 좀 들려도 되냐?”

“…어? 뭐 살 거 있어?”

“어. …어.”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멍한 표정이었다. 보쿠토가 고개를 기울이는 게 머리 위에 물음표를 달아줘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쿠로오는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손으로 뭘 꼽아가며 뭐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보쿠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뚱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볍게 두어 번 젓고 옷을 갈아입었다. 쿠로오의 이상상태는 마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그랬다. 사고 나와. 왠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보쿠토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금방 나오겠다고 말하고 쿠로오는 마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트에서 허겁지겁 나온 쿠로오의 손에 들린 건….

“우와! 먹어도 돼?”

“먹어도 돼요? 라고 말해야지.”

“괜찮아. 잔소리쟁이 말 들을 필요 없어.”

“…이 자식이.”

에이키가 히히 웃고는 쿠로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 쿠로오는 사탕과 초콜릿을 하나씩 담아주었다. 에이키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으니 많이 못 먹일 거란 생각에 일부러 조금만 줬더니 야쿠가 조금 너그러운 눈빛으로 봐줬다.

“내일도 줄게.”

“내일도? 너무 좋아!”

“그렇게 좋아?”

“응. 과자 좋아. 밥 대신에 이거 먹었으면 좋겠다.”

“그건 안 되지.”

그 말에 아이는 혀를 찼다. 그러면서 구겨지는 얼굴이 누구를 쏙 빼닮아서 쿠로오는 곤란하게 웃었다. “어허, 인상 쓰면 주름 생기는데.” 미간을 톡 건드렸더니 놀라서 흠칫거리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실실 웃었다. 살살 풀어지는 그 얼굴이 너무 예뻐 쿠로오는 도도도 발걸음 소리를 내며 벤치에 가 으쌰- 하고 앉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그러다가 에이키가 사탕을 내밀자 얼른 쿠로오가 몸을 털고 일어나 에이키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에이키가 뜯지 못한 사탕을 뜯어 입까지 손수 넣어주었다. 야쿠가 그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에이키 너무 오냐오냐 하지 마. 이제 내년이면 유치원도 간다고.”

“이 때 아니면 언제 오냐오냐 해주려고.”

“…하여간.”

야쿠는 목소리를 더 낮추어서 중얼거렸다. 둘 다 아주 지극정성이야. 쿠로오는 그 ‘둘’이 누구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단박에 깨달았다. 쓴 맛이 입에 괜히 감돌았다. “아저씨.” 에이키가 그런 쿠로오의 옷을 살짝 잡아당기며 저를 보게 했다. 에이키를 바라보면서, 쿠로오는 예전에 아카아시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아이가 눈치가 꽤 빠르다는 건 아무래도 이런 걸 말하는 거였겠지….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검은 머리가 햇빛을 받아 뜨거웠지만 그것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게 사랑이었다.

“아저씨는 안 먹어?”

“아저씨도 먹을까?”

“응.”

“그럼 아저씨 건 에이키가 뜯어줄래?”

“우응.”

에이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사탕 하나를 받아 그걸 뜯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조막만한 손에는 아직 힘이 없어 비닐을 잘 뜯지 못했다. 특히나 날씨가 더우니 그 비닐에 사탕이 녹아 붙어있어서 더 그랬다. 으으. 그렇게 앓는 소리를 내다가 북 찢어지면서 반동으로 사탕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에이키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눈썹이 얼른 가라앉고 어깨가 축 처졌다. 쿠로오는 그 표정을 자주 봤었다. 하아. 한숨을 쉬며 일어나 벤치 밑에 떨어진 사탕을 줍는 아이의 옆모습은 예전 학교를 다닐 때 지하철 옆자리에서 자주 보던 사람의 표정과 비슷했다.

“괜찮아.”

쿠로오는 그래서 얼른 일어났다. 일어나서 아이에게 웃어주었다. “이번 건 그럼 연습이라고 치고 다시 해볼래?” 야쿠도 얼른 아이의 옆에 쪼그려 앉아 말을 걸었다. “그래, 그러자. 다시 한번 더 해봐.” 그러나 아이는 이미 입이 나와 있었다. 떨어져서 모래가 묻은 사탕을 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야쿠가 얼른 아이의 손에 있는 사탕을 잡고 대신 버려주겠다고 하면서 쿠로오에게 눈짓했다. 쿠로오는 대답 대신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손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사탕을 새로 건네주면서 다시 아이를 벤치에 앉혔다.

“또 떨어지면 어떠케….”

“그럼 안 떨어지게 받쳐줄게.”

자, 다시 해봐. 아이의 손 밑에 쿠로오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채로 대기했다. 작은 손의 거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큰 손이 아래에 든든히 받치고 있으니까 에이키는 다시 손을 오물조물 움직였다. 입술에까지 힘을 주며 뜯으니 결국 퐁하고 또 떨어뜨렸다. 떨어뜨리자마자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쿠로오는 웃었다. 그렇게 웃는 쿠로오의 손에 떨어진 사탕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어 쿠로오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손을 얼른 뻗어 사탕을 집은 후 쿠로오 입에 넣어주었다. 참으로 당당했다.

“맛있어?”

“너 진짜 닮았구나.”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뜨악한 건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던 야쿠뿐이었다. 에이키는 ‘누구를?’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고 쿠로오는 계속 웃고 있었다. 입 안의 사탕은 비닐에 눌러 붙어있던 사과맛 사탕이었다.

“켄마를….”

그렇게 말하면서 쿠로오는 아이의 볼에 손을 올렸다. 입 안에서는 사과 향이 나고 있었고 제 앞에는 사탕 때문에 한쪽 볼이 부풀려진, 쿠로오를 빼닮은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쿠로오는 알고 있다.

“그거야 나는 코즈메 에이키인걸.”

당연한 소리라는 듯이 아이가 말했다. 에이키는 그렇게 퉁명하게 말하면서도 곧 히히 소리를 내며 웃었다. 눈이 반짝였다. 쿠로오가 그 눈에 비쳤다.

“원래 애기는 아빠 닮는 거랬어. 그쵸, 야쿠 씨?”

“그러게…. ㅋ,얘가 이상한 소리 했네.”

야쿠는 저도 모르게 쿠로오의 이름을 말하려다가 얼른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말을 바꿨다. 그랬는데 갑자기 아이가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에이키는 손을 내밀어 제 목을 잡았다.

“어, 나 사탕 삼켰다….”

“뭐?”

쿠로오와 야쿠가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그 말에 얼른 아이를 살폈다. 에이키는 눈만 깜빡깜빡 거렸고 목 안 아프냐고 살피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아이는 꽤나 침착하게 대답했다.

“웅. 그냥 꿀꺽 했어.”

“…미치겠다. 이건 누구 닮은 거냐?”

야쿠가 결국 한소리하면서 괜히 쿠로오를 흘겨보았다. 쿠로오는 억울했지만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어렸을 때 자주 껌 같은 거 삼키잖아.” 그렇게 둘러대는데 에이키가 한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켄마!” 그 말에 쿠로오도 웃으면서 “그렇다네….”라고 말해버렸다. 야쿠는 여전히 흘겨보고 있었다.

“이거, 야쿠 씨가 들고 있어.”

“초코 안 먹어?”

“웅. 하나는 아빠 줄래.”

그렇게 말하면서 에이키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쿠로오의 손을 잡고 끌었다. 놀자며 끄는 아이에게 쿠로오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너, 오늘은 점심 먹고 온 거지?” 야쿠의 목소리에 쿠로오는 에베베-소리를 내며 혀를 내밀었다. 그러자 에이키가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 그러더니 저도 따라서 혀를 낼름 내밀었다. 야쿠는 ‘뉘 집 아들 아니랄까봐 아주 말썽이다!’라는 말이 목 끝까지 걸렸지만 결국 말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심호흡했다.

“둘 다 아주 혼날 줄 알아라!”

순화해서 나오는 말도 표정도 전혀 순화된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야쿠의 손에서 초콜릿이 구겨졌다. 아하하! 에이키의 즐거운 웃음소리에 쿠로오는 얼른 에이키를 들고 제 머리 위까지 들었다. 에이키가 공중에서 발을 굴렀다. “워, 워.” 쿠로오가 아이를 진정시키고 얼른 제 어깨 위로 올렸다.

“무서워, 떨어질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신이 난 목소리였다. 쿠로오는 다리를 꼭 잡아주었다. “아야야야!” 그렇지만 아이가 쿠로오의 머리를 붙잡는 손까지는 안심시키지 못했다. “머리, 머리!” 안 그래도 잘 뻗치고 잘 뜨는 머리가 잡기는 더 쉬웠는지 아이는 꼭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야쿠는 혼내려던 건 잊고 크게 웃었다. “머리를 다 뽑아버려, 에이키!” 험한 말에 쿠로오가 화를 냈고 에이키는 머리를 꼭 붙잡았던 손에 슬슬 힘을 풀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에이키는 잡아당긴 쿠로오의 머리 부근을 쓰다듬었다.

“호오해주께, 호오!”

“그래봤자 뽑힌 머리는 복구되지 않는단다, 에이키.”

“흐어?”

“괜찮아, 에이키가 뽑은 머리니까 기쁘게….”

“으아앙!”

“아이고, 에이키 운다. 어떡할 거냐, 얏쿵!”

그 말에 먼저 삐죽이며 애 동심을 깨부순 야쿠가 혀를 내밀었다. 에이키는 뽑힌 머리가 복구되지 않는다고 하니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우는 게, 아직 어린아이였다. 쿠로오가 얼른 잘 받쳐서 내려서 품에 안고 달래주었지만 겁먹은 아이가 그렇게 금방 그칠 리 없었다. 야쿠가 옆에서 열심히 달래주어도 한참은 걸렸다. 결국 그 날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남자 둘이서 아이 하나 달래느라 시간을 거의 다 소비해버렸다. 결국 쿠로오가 가방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어주고서야 눈물은 쏙 들어갈 수 있었다.

“에이키.”

아직도 눈가가 벌건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리던 야쿠는 에이키의 작은 가방을 열어 냉각시트를 꺼냈다. “열이 있으니까 이거 잠깐 붙이자.” 그렇게 말하며 야쿠가 포장지를 뜯자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에이키가 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가만히 이마를 드러낸 채 기다렸다. 쿠로오는 그런 야쿠와 에이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 문질문질해.” 야쿠가 그렇게 말하니 에이키가 얼른 조막만한 손으로 이마에 붙인 시트 위를 문질렀다. 야쿠는 그걸 보다가 쿠로오에게 고개를 돌려 설명을 해주었다.

“에이키가 자주 열이 오르니까 잘 보고 열 있다 싶으면 붙여줘.”

“…자주 열이 올라?”

“음, 아무래도 일찍 태어났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에이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이키, 이번엔 사탕 삼키면 안 돼.” 그렇게 다시 주의를 주자 에이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는 일찍 태어났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뒤늦게 알았다. 왜 일찍 태어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나? 몸이 많이 약한 걸까.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다음 주부터는 저 아저씨랑만 놀아야하는데 할 수 있어, 에이키?”

“응!”

“만약에 저 아저씨가 괴롭히면 나한테 꼭 말하는 거야?”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

“켄마보다 내가 더 세잖아.”

“으응….”

그렇게 말하면서 에이키는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날 괴롭히지 않을 것 같다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보고 생각의 호수에서 빠져나와 축 처진 마음으로 애써 웃으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쿠로오를 보았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궁금한 일이 있을 때면 항상 누군가가 하는 행동이었다. “걱정 마. 그럴 리 없어.” 그 말에 에이키가 환히 웃었다. 그 미소는 사진에서 자주 보던 제 모습이었다.





“아저씨!”

여느 때와 같은 점심시간, 에이키는 팔을 벌려 놀이터로 걸어오는 쿠로오에게 달려들었다. 요 한 달 사이에 에이키와 많이 친해진 쿠로오도 얼른 팔을 뻗어 에이키를 잡아들었다. 에이키가 얼른 쿠로오의 목 뒤에 짧은 팔을 감고 꼭 매달렸다. 쿠로오는 그런데도 전혀 숨이 막히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해서 벅차올랐다. 아이의 살 냄새와 땀 냄새는 계속 살에 코를 부비며 맡고 싶게 했다. 쿠로오가 코를 거의 파묻듯이 하며 고개를 잘게 흔들자 에이키는 간지럽다고 말하며 웃음소리를 점점 높여갔다.

“아, 피곤하다.”

“뭐? 벌써?”

한참 그렇게 웃고 그늘의 벤치에 쓰러지듯이 앉은 에이키가 숨을 몇 번 몰아쉬고 한 말이었다. 이제 네 살 된 애가 좀 자지러지게 웃었다고 피곤하다고 저렇게 피로한 목소리로 말하다니. 쿠로오는 안 웃을 수가 없었다. 귀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한 손은 그늘을 가려주고 다른 손으로는 손부채질을 해줬다. 에이키는 발을 까딱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모구눈 여행울 떠나요~모구모구~♪”

힘들다고 하더니 노래를 부를 힘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웃었다. 에이키가 그걸 보고 조금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좀 더 낮췄다. 그래도 오물오물하는 입술이 여전히 이젠 같이 노래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노래가사를 계속 읊었다. 모구모구가 뭔가 싶어서 회사에 돌아가자마자 검색을 해보니 생각했던 이미지와 영 다른 게 나와서 당황했었다. 돼지 같은 게 아니라 구름이라니. 그래도 한 편 어찌 구해서 집에서 본 결과, 구름들이 하늘을 떠다니며 끊임없이 물방울들을 먹는 것 때문에 모구모구인 것을 알게 되고는 꽤 과학적인 만화구나 싶었던 쿠로오는 옛날 자신이 그렇게 혈액을 외치고 다녔던 사람이라는 걸 새삼 떠올렸다.

“흐응~후♪ 솜사탕 먹고 싶다.”

“…어?”

가끔 이렇게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직 어려서일까. 쿠로오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에이키를 보며 어설피 웃으며 가만히 에이키의 생각을 추리해본다. 모구모구 노래를 부르니까 모구모구를 떠올리고 구름이니까 솜사탕인걸까? 그렇게 쫓아갈 때는 벌써 에이키가 발을 흔들며 혼자서 놀고 있었다. 아, 아이는 어렵다. 쿠로오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름 그 시절들을 다 겪고 온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또 어른과 아이는 다른가보다.

“아저씨! 오늘은 공놀이하자!”

오늘 집에서 공도 들고와썽!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이 내민 공은 쿠로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가 웃기도 울기도 애매하게 만들었다. 에이키가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쿠로오처럼 이리저리 뻗친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이 공은 말이야! 파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어.” 에이키가 쿠로오의 눈치를 보면서도 모르는 척 공을 설명했다. 쿠로오는 웃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심호흡부터 했다. “아저씨도 만져볼래?” 그렇게 말하며 에이키가 공을 내밀었다. 쿠로오는 말없이 공을 쥐었다.

미카사.

쿠로오는 이 공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에이키 표현대로 하자면 이 공으로 ‘매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쿠로오는 이 공을 에이키의 보호자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이 공은 누가 사준 거야?” 그렇게 물어보자 에이키가 눈썹을 살짝 내린 채로 “응…. 예전에…쇼-씨랑 같이 마트 갔을 때….” 그렇게 말하면서 에이키는 손을 꼬물거렸다.

“응, 그랬구나. 예쁜 공이네.”

“진짜?”

“응, 사실 나 이 공 좋아하거든.”

“진짜아?”

“응, 진짜.”

“히히, 그럼 오늘 공놀이 할 거지요?”

아빠는 공놀이 못 하게 해. 집에서 하면 다친다구. 그러니까 아저씨가 같이 해조야 하는데 해줄 거지요?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쿠로오는 웃었다. “집에서는 공놀이 하는 거 위험하지.” 그렇게 말했더니 입술을 찌푸렸다. 볼을 조금 부풀리면서 “아저씨도 아빠랑 똑같은 소리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알겠지만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밖에서 아저씨랑 공놀이 하자.”

그렇게 말했더니 에이키가 얼른 눈을 반짝였다. “응!” 아주 좋다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났다. 쿠로오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셔츠를 걷고 있는데 에이키가 배구공을 땅에 내려놓았다. 쿠로오가 의문을 표하며 에이키를 말리는 것보다 발을 휘두르는 게 빨랐다.

“어허! 지금 뭐하는 겁니까, 에이키군?”

식겁하며 얼른 쿠로오가 공을 잡았다. “와, 손으로 잡았다!” 에이키가 이상한 것에 감탄하고 있으니 결국 쿠로오가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겨우 올리며 에이키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에이키는 그 질문을 받고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또 기울이며 인상을 썼다.

“공놀이?”

“공놀이라니, 왜 이 공을 발로 차!”

“응?”

“…이 공은 발로 차는 공이 아닌 거 몰랐어?”

정확하게 말하면 발로 차도 되지만 그렇게 다른 구기종목처럼 킥을 날리는 게 주가 아닌 게임의 공이었다. 쿠로오는 공을 잡고 에이키의 키에 맞춰 에이키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에이키가 쿠로오에게 다가오고 쿠로오가 쥐고 있던 공에 손을 올렸다. 달라는 신호였지만 쿠로오는 일단은 주지 않았다.

“그 공은 공 아니야?”

“공이지?”

“그럼 어떻게 가지고 놀든 괜찮지 않아?”

그 말과 그 눈에 쿠로오는 괜스레 그 아이의 성을 떠올렸다. 멍하게 있다가 결국 공을 넘겨주었다. 아이의 입은 조금 튀어나와있었다. “왜 이 공은 발로 차면 안 돼?” 그렇게 묻는 것부터가 쿠로오는 아주 약간 혼란스러웠고 아주 많이 속상했다. “으음….” 쿠로오는 입 안에서 제 혀를 살짝 물었다.

“배구…몰라?”

“배…구?”

모르는구나. 아무 것도 안 알려준 거구나. 쿠로오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유명해지면, 프로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면 그 때는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못해도, 다시 만날 그 날에 국가대표라고,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계속 버릴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겨우 버티면서 계속 배구를 했었는데 코즈메 에이키는 배구공을 발로 찼다.

조금 슬프네. 그렇게 중얼거린 쿠로오는 공을 잡고 있는 에이키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치고, 제 손으로 덮었다. “에이키.” 쿠로오는 에이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에이키는 그런 쿠로오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배구해볼래?”

“배구….”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받고 올리고 치는 게임이야.”

“발로 차지 않고?”

“응, 발로 차지 않고-. 잠시 공 빌려줄래?”

응, 자. 에이키가 얼른 공을 내밀었다. 에이키의 공을 받은 쿠로오는 공을 한 번 살피고 모래를 털어냈다. 산 지 오래 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공기도 적당하게 들어가 있었다. 쿠로오는 공을 든 채로 두 손을 이마 근처까지 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공중으로 밀었다. 하늘로 공이 떴다가 내려오는 시점에 팔을 내밀었다. 다리를 굽히고 일어나면서 뻗은 팔을 살짝 들었다. 통. 가벼운 소리를 내며 공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공은 이윽고 쿠로오의 팔에 맞고 정확하게 위로 솟구쳤다.

“우와….”

공을 따라 고개를 움직이던 에이키가 탄성을 내뱉었다. “계속 하는 거야?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어?” 그 말에 쿠로오는 웃었다. “응, 계속 할 수 있는데 그럼 나 혼자 노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공중에서 막 내려오는 공을 오버핸드 패스로 한번 더 공중으로 올리고 다시 내려오는 공을 잡았다.

“에이키도 같이 주고받으면서 하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나, 나도 할 수 있을까?”

에이키는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설레고 있었다. 눈은 반짝이는데 손은 가만히 두질 못했다. “어디? 어디 서야 해?” 그렇게 말하는데 아주 발이 동동 굴러선 얼른 하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쿠로오는 그 모습이 어렸을 적 자기를 보는 것 같아 떨리면서도 배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 때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아 곧 차분해졌다.

“처음에는 오버핸드 패스…그러니까 이렇게, 머리 위로 공을 주고받자.”

“왜? 아까 아저씨가 한 것처럼 하면 안 돼?”

에이키가 엉거주춤 두 손을 주먹 쥐고 딱 붙여서 무릎을 굽힌 채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니라 이렇게 손을 모으는 거야.” 각각 주먹이 아니라 두 손을 모으는 걸 가르쳐주며 쿠로오는 한쪽 무릎을 모래 위에 올렸다. “그리고 공을, 손이 아니라 여기, 팔에 맞춰야 해.” 아직 네 살밖에 되지 않아 얇디얇은 팔을 살짝 그러쥐었다가 쿠로오는 옆구리에 잠시 끼었던 공을 다시 두 손으로 잡았다. “이렇게.” 그리고 그 공을 잡은 채로 에이키의 팔에 살짝 올렸다. 에이키가 얼른 팔을 위로 들었다. 팔만 움직이는 건 완전 초심자와 같았다. 팔 말고 무릎을 굽혔다 펴고 팔은 그냥 대기만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쿠로오는 에이키를 한번 살폈다. 하지 말라는 말만 많아서 싫증이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에이키는 “팔 자꾸 움직이는데 어떡해…?” 라는 말만 했다. “처음엔 다 그래.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잘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에이키가 웃었다.

“그런데 이거 아플 텐데 괜찮겠어?”

“해볼래!”

에이키가 손을 번쩍 들며 호기롭게 말하니 더 이상 뭐라고 말릴 수가 없었다. 쿠로오는 웃었다가 숨을 한번 짧게 내쉬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괜히 손이 다 떨렸다. 약하게 해야지, 약하게, 받기 쉽게. 그렇게 세 문장을 떠올리며 쿠로오는 리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손끝이 하얗게 얼어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공을, 가볍게 공중으로 밀었다.

“어어~.”

에이키가 공을 보고 쫓아가고 팔을 내밀었다. 공이 팔에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손목에 맞았다. “아야!” 약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딘가 잘못 맞은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얼른 발을 뻗어 에이키 밑으로 다시 떨어지는 공을 한 손으로 건드리듯이 공중에서 잡고 공의 기세를 죽인 뒤 바로 바닥에 내려놓듯이 던져놓고 “어디 봐.” 에이키의 손목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쥐었다. 손목과 그 주변이 빨갛게 변했다. “많이 아파? 어디가 어떻게 아파?” 쿠로오는 모래가 묻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얼른 무릎을 세운 채로 에이키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던 에이키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금 아파….”라고 그래도 안 아픈 척 하려고 꾹 참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해.”

“…웅, 조금 아픈데 조금 후에 안 아플 거 같아….”

그렇게 말하더니 코를 쓱 들이마시고는 씩 웃는다. “그래도 있지, 아까 공 받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얼른 칭찬해달라고 눈을 반짝이는 건 누구를 닮았는지 너무 잘 알아서 부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 처음인데도 잘 하네.” 잘한다, 잘한다.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재밌다! 나 다시 해볼래!”

“…진짜?”

“응, 재밌어!”

이거 그럼 계속 주고받는 거야? 나중에 야쿠 씨랑 리에푸 씨랑 쇼 씨랑도 할 수 있어? 에이키가 신이 나서 공을 공중에 던졌다. 그리고 “어어.” 하면서 쫓아가서 어떻게든 다시 받으려고 팔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손을 뻗어서 결국 어정쩡한 오버핸드 자세로 공을 다시 올리고는 눈을 또 반짝였다. 쿠로오는 혼자서 공을 가지고 노는 에이키를 보다가 그제야 무릎을 털며 일어섰다. 에이키의 눈은 거짓말을 하는 눈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 것도 있고 처음인 것도 있어서 에이키는 한 번 받는 게 고작이었다. 으응, 아저씨 이거 잘 안 돼. 쿠로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상하다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눈이었다. 쿠로오가 자세를 고쳐주고 방법을 알려주면서 다시 서로 번갈아가면서 하는 걸 반복했다. 에이키는 더 이상 하나의 방법에만 집착하지 않고 어떨 땐 두 손을 뻗고 어떨 땐 두 손을 모으고 팔로 받았다. 그리고 어떨 땐 이상한 자세로도 받기도 했다.

“아저씨, 멀리 주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에이키는 계속 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발을 움직이고 팔을 뻗었다. 에이키의 노란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노란 눈에 가득히 공이 담겼다. 쿠로오는 그 눈을 알고 있었다. 쿠로오는 손을 뻗었다. 쿠로오의 손에서 공이 올라갔다. 그 공을 노란 눈이 쫓았다. 그 눈을 가진 아이가 웃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하하, 재밌다. 이거 맨날 하고 싶다!” 그렇게 말하면서 에이키가 허덕였다. “벌써부터 이렇게 버거워하면 어떡합니까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쿠로오는 오늘 처음부터 좀 간질였다고 벤치에 앉아 힘들다고 한 것을 보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후, 좀 쉴래.”

쿠로오는 웃으면서 미리 챙겨온 물을 꺼냈다. 에이키가 물을 마시고 “캬아~.” 소리를 냈다. 어디서 배운 거냐고 웃었더니 TV에서 봤다면서 가끔 야쿠가 그런다고 했다. 야쿠는 자주 와? 그렇게 물어보자 에이키가 으음…. 하고 망설였다. “가끔 와! 리에푸 씨도….” 그러다가 에이키가 다른 말도 했다. “가끔 자고 가기도 하고 놀러가서 자기도 해!” 그 말에 쿠로오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가 얼른 하하하, 과장되게 웃었다.

“하, 하…그렇구나. 리에프도 자고 가?”

“응, 어떨 땐 야쿠 씨랑 리에프 씨랑 같이 야쿠 씨 집에서 자.”

있지, 야쿠 씨랑 리에프 씨랑 같이 산다? 에이키는 무슨 비밀을 말하는 것 마냥 속삭였다. 쿠로오는 야쿠와 리에프가 같이 산다는 것도, 그리고 왜 리에프가 모델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라고 말해주었다. 문제는 그것보다 리에프가 알파라는 게 걸렸다.

“자러 갈 때 그럼…에이키 아빠도 같이 자러 가는 거야?”

“응? 아니, 내가 자러 갈 땐 나만 가….”

에이키는 왠지 시무룩해보였다. 쿠로오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 혼자 가?” 그렇게 말했더니 에이키가 입을 내밀었다가 얼른 다시 집어넣었다.

“아빠 아플 때 가는 거니까.”

“…아빠는 자주 아파?”

“응. 아빠 자주 병원 가. 병원 가서 약 받아와. 아빠 아플 땐 나 할머니 집이나 야쿠 씨 집이나…쇼 씨 집이나…아카아시 집도 가.”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에이키는 결국 다시 입을 내밀었다. 시무룩해서는 에이키는 중얼거렸다. “아빠가 아픈 건 몸이 약한데 항상 일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거라고 그랬어. 아빠가 일 덜 했으면 좋겠지만 일을 안 하면 나랑 못 산다고….” 결국 에이키가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우성이라는 게 뭐야?”

쿠로오는 대답대신 손을 내밀어서 에이키 머리를 쓰다듬었다. 켄마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한 아이였다. 자주 병원에 갔었고 항상 약을 달고 살았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아마 그 약은…. 쿠로오는 오랜만에 다시 제 목을 한 손으로 감쌌다. “아저씨도 잘 몰라?” 에이키가 그렇게 물었다. 쿠로오는 애써 웃었다. “응.” 그렇게 말하니까 에이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켄마가 아플 때는 나 엄청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곳 놀러간다? 저번에 쇼-씨랑 쇼 씨 엄청 멀리 있는 집도 갔어! 미야기! 그리고, 그리고-놀다 오면 켄마가 엄청 꼭 안아주고 나 사랑한다고 해주고 맛있는 거 해줘!”

“에이키는 장하구나.”

“그래야 켄마가 걱정 안 하니까! 난 아빠가 슬퍼하는 거 싫은걸.”

쿠로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장하다, 장해.” 그래서 쿠로오는 에이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연신 칭찬했다. 에이키가 웃었다. 그 때 쿠로오의 알람이 주머니에서 울렸다. 그 알람 소리가 들리자 에이키가 또 입을 비쭉 내밀었다. 헤어져야하는 시간에는 항상 그랬다. 쿠로오는 에이키 볼을 쓰다듬어주며 달래줘야만 했다.

“내일도 놀면 되지.”

“우응….”

“내일도 배구 하자.”

“응….”

“자, 아빠 기다리신다. 얼른 가서 맛있는 거 먹어야지.”

“네에-.”

에이키가 배구공을 품에 안고 일어났다. 성인용이 아닌데도 에이키에게는 한 품 가득이었다. 쿠로오는 에이키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신발 끈을 매주었다. “있잖아.” 에이키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쿠로오를 불렀다.

“아저씨 이름은 뭐야?”

“그건 왜?”

“그냥…. 아저씨는 계속 아저씨라고 부르잖아.”

“이름 이야기하면 너 아빠한테 이야기하려고 그러지.”

“…아, 안 해! 비밀로 하기로 해서어-나 말 안 하고 있는걸!”

그렇게 말하면서 볼을 부풀려 봐도 쿠로오는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쿠로오도 아저씨라는 호칭보다 제 이름을 불러주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그걸 바라기에는 아직 무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쿠로오는 “오늘은 안 되고 나중에 그럼 이야기해줄게.” 그렇게 말했더니 에이키가 치사하다고 그랬다. 그 말투마저도 누구랑 닮아서 쿠로오는 결국 또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