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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하는 닛

[쿠로켄] panna cotta 본문

ㄴ쿠로켄/ㄴ주간쿠로켄

[쿠로켄] panna cotta

2018. 7. 22. 00:00

주간 쿠로켄 23주차 : 요리



  눈을 떴을 때는 아침 10시하고도 30분이 흐른 후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끈적거리는 땀에 전 몸과 붙어있는 이불을 떼어내려고 괜히 밍기적거렸다. 그러다가 등 뒤에 더운 숨이 닿는 걸 느끼고 잠시 숨을 멈췄다. 뒤척이다가 켄마 쪽으로 몸을 붙인 모양이었다. 켄마의 머리카락이 등에 붙는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이불에서 나가는 걸 완전히 포기하고 대신 손을 뻗어 에어컨을 켰다. 선선하게 28도. 예전 같았으면 이런 온도로 켤 바엔 켜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이번 여름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방 안이 28도만 되어도 상대적으로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등 뒤에 닿는 숨이 아까보다는 조금 더 고른 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몸을 돌려서 켄마를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뒤척이다가 괜히 켄마를 깨우는 건 아닌가 싶어서 오히려 몸을 더 웅크렸다. 졸리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날이 너무 더우니까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안 먹으면 하루 정도는 나야 괜찮지만…. 켄마는 분명 더위를 먹을 게 틀림없었다.

평소에도 잘 안 먹으니까….

먹는 것보다 귀찮은 게 더 큰 사람을 챙기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기왕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생겼으니, 나는 눈을 감고 오늘 점심을 뭘 먹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주먹밥을 할까. 어제 밥을 안쳐놓고는 다른 걸 먹어서 아직 밥이 남아있었다. 유부를 사놓았으면 유부초밥을 했을 텐데 저번 주 주말에 떠오르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지. 좋아,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불을 쓰지 말고 주먹밥을 하자. 주먹밥은 살짝 구운 게 맛있지만 오늘은 좀 귀찮아…. 좀 이따 저녁때면 모를까……. 주먹밥에는 저번에 받은 매실장아찌도 좀 넣고 몇 개는 참치도 좀 넣으면 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랑 나눠먹는 거면 꽝 같은 것도 재미삼아 만들어보겠지만 켄마와 먹을 때는 그런 건 별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켄마와의 식사 시간은 늘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마음이었다. 귀찮은 만큼 한 번 먹을 때는 꽤 진지한 켄마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그걸 만들어볼까.


  그 생각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조용한 방에서 그 바람 빠지는 소리마저 크게 들려서 나는 괜히 그 이후로 잠시 숨을 죽이고 켄마의 숨소리를 들었다. 계속 고르게 열기가 내 등 뒤에 묻었다. 나는 그 희미한 더운 숨에 안도하고 다시 입에 미소를 지었다. 미래에 그걸 만들어서 보여줬을 때의 켄마 표정도 상상하면 행복하지만 지금 등 뒤에 닿는 켄마의 숨도 행복했다. 좋아, 이제 열한시쯤 되지 않았을까. 이제 슬슬 때 맞춰 점심을 먹으려면 일어나야 했다. 빨래도 돌려놓고 어제 먹고 못한 설거지도 해놔야 했다. 침대에서 몸을 빼려고 하자 켄마가 뒤척였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는 얼른 몸을 돌려 켄마를 토닥였다. “더 자.” 조용하게 속삭이며 몇 번 토닥이니 켄마가 그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다가도 다시 눈을 감고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이불에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이불 밖으로 나오니 아무것도 안 걸친 몸에 바로 닿는 에어컨 바람이 조금 차가웠다. 으음. 일단 침대 밑의 티셔츠를 주워 올려 걸치고는 온도를 올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바람세기를 약하게 해놓고 살금살금 옷장 문을 열었다.




좋아 그럼 그거부터 만들어볼까.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괜히 두 손을 허리에 올렸다. 처음해보는 거지만 비슷한 걸 만들어봤으니 얼추 되겠지. 냉장고로 걸어가 전에 사두었던 생크림과 우유를 꺼냈다. 아, 그 전에 그거. 얼른 싱크대에 두 개를 올려놓고 나는 찬장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꺼낸 상자도 같이 올려두고 볼을 꺼내 물을 담았다. 그 안에 상자에 있던 판 젤라틴을 꺼내 넣어두었다. 그다음 우유와 생크림. 조금 오래된 우유 팬에 우유와 생크림을 쏟았다. 설탕도, 바닐라 향이 나게 전에 사두었던 바닐라빈을 꺼내서 긁어서 넣었다. 가스레인지의 불이 올라가자 더운 열기가 슬슬 부엌에 가득 차는 게 정말 여름이었다. 켄마는 여름이면 뭔가 입에 끈적끈적하게 붙는 걸 싫어했다. 꿀꺽꿀꺽 삼키거나 호로록 녹아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켄마는 여름에는 무스 케이크나 푸딩을 좋아했다.


  젤라틴을 꺼내 같이 섞으면서 켄마가 최근 판나코타라는 이탈리아식 푸딩을 보고는 ‘저건 그냥 푸딩과 뭐가 달라?’ 라고 물었던 게 다시 떠올랐다. 그 때 우리는 크림브륄레를 먹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으음, 잠시 고민했다. 이거랑 비슷한 맛이지 않을까라고 대답했지만 역시 그래도 이름이 다르고 조리법이 다르니까 맛도 다르겠지. 켄마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지만 아마 내심 아쉬웠을 게 틀림없었다. …. 으음, 아쉽지는 않았더라도 일단 판나코타라는 걸 먹는 것에 거부감은 없겠지. 까먹었어도 어쨌든 켄마가 좋아하는 여름 음식일 건 분명했다. 푸딩을 좋아하니까.


  은근히 더워서 땀이 맺힐 쯤 되어서야 불을 끌 수 있었다. 미리 꺼내놓은 푸딩 컵들에 골고루 나눠 담았다. 3시간이랬나. 냉동실에 넣으면서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지금이 11시 30분이니까 2시쯤이면 될 것 같았다. 주먹밥은 금방 만드니까 한 시간만 더 자고 일어날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냉동실에 무언가를 보고 나는 “아.”라고 말했다. 으음.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냉동실에서 얼려놓은 산딸기를 꺼냈다. 으음, 귀찮아서 그냥 카라멜 시럽 뿌리려고 했는데 역시 그래도 디저트는 ‘보는 맛’도 한몫하지. 기왕 불을 켠 김에 나는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팬에 산딸기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넣었다. 그리고 다시 불을 켜고 산딸기를 눌러 으깼다. 설탕을 붓고 또 달달달달…. 흠, 생각보다 색도 예쁜 게 하루 날을 잡고 얼려놓은 산딸기를 잼으로 만들어놓을까 싶어졌다. 물론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이미 너무 더워. 날이 좀 풀리면…. 그 때까지는 산딸기가 남아 있으려나. 그러다가도 오늘의 디저트가 성공하면 자주 눈을 반짝일 켄마를 생각하면 미리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맛에 디저트를 만드는 거지.


  처음 켄마를 위해 만든 디저트는 생일 케이크였다. 애플파이는 좀 어렵대서 간단한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그 때 켄마가 웃었던 것과 먹은 후에 행복해하는 얼굴을 본 후로는 나는 종종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젠 애플파이 정도는 뭐, 좀 자신감을 가지고 남에게 의기양양하게 내밀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디저트에 대해 배워가면서 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늘어났다는 것도 좋았다. 여행 이야기를 해도, 하다못해 켄마만 잘 아는 게임 이야기를 해도 디저트가 소재가 되면 우리는 또 서로의 눈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물론 단순히 켄마와 이야깃거리가 늘었다는 것이 아니다. 켄마와 공유하는 세계가 더 커지고, 교집합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둘은 다른 사람이니까 각자의 세계가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이 겹쳐진다는 건 그런 것에 사사로운 나에겐 뿌듯함이었다.

  다른 접시에 담아두고 열기를 식히는 동안 나는 설거지하고 다시 또 뒷정리와 주먹밥 준비를 했다. 그 전에 싱크대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니 더위가 다시 또 살짝 누그러들었다. 으음, 다시 냉장고를 열어볼까. 내가 다시 냉장고를 열었을 때 켄마와의 행복을 아까 생각해서인지 괜히 냉장고에 켄마가 좋아하는 음식과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어우러져서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보니 울컥했다. 벌써 한두 해가 아닌데도 나는 이런 소소한 일상이 행복했다.



  밥솥을 열었다. 더운 열기가 빠져나왔다. 으, 또 더워…. 그 잠깐의 열기에도 못 버티고 난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커다란 볼에 밥을 퍼 담았다. 밥솥에서 바로 꺼내지 않은 밥이 조금 굳은 것 같아서 주걱을 세워 푹푹 찔러 다듬으며 소금을 섞어 밥의 간을 맞췄다. 도마 위에 펼쳐놓은 랩 위에 밥을 퍼놓고 그 안에 장아찌를 넣었다. 다음은 랩을 들어 올리면서 장갑을 낀 손으로 주물주물 꾹꾹 눌렀다. 모양을 잡아가면서 그렇게 큰 걸 몇 개 만들고 나니 밥이 애매하게 남아버렸다. 하나를 만들기엔 작고 그렇다고 그냥 먹기엔 아쉬워서 남은 장아찌를 잘게 총총 썰어 밥에 넣었다. 다시 한 번 주걱으로 비비는데 장아찌의 신 맛의 향기가 올라와서 괜히 침을 삼켰다. 역시 더운 여름에는 시고 간편한 게 식욕을 끌어올린다. 그렇게 섞은 걸 잠시 두고 숟가락을 꺼내고 한 손에는 랩을 올렸다. 숟가락으로 한 숟갈씩 퍼서 손 위의 랩에 올리고 그 상태로 랩을 모아서 작은 밥을 방울토마토크기의 동그라미로 만들고 나사 돌리는 것처럼 감싼 방울을 돌돌돌 몇 번 돌리고 랩을 펼치면 작은 미니 주먹밥이 된다. 이걸 몇 번 반복해서 5개 정도를 만들었다.

준비는 오케이.

  그리고 나는 식탁 위에 두었던 폰을 켰다. 1시에 가까울 줄 알았는데 중간에 딴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벌써 1시 7분이었다. 좋아, 이제 그럼 켄마를 깨워볼까. 괜히 냉동실에 굳혀지고 있을 걸 떠올리니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방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에어컨을 끄고 켄마의 곁에 걸처앉아 켄마의 볼을 쓸고 켄마의 몸 위에 내 어깨를 눌렀다.

“응….”

“켄마.”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켄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일어나기 싫다고 말하는 거였다. 그러다가도 곧 눈을 끔뻑였다. 아, 실패. 아직 눈꺼풀이 많이 무거워서 눈이 일어나질 못합니다. 바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웃기면서도 안쓰러워서 나는 켄마 상체를 들어 올려 앉혀놓고 그대로 내 품에 기대게 했다. 토닥토닥. 그렇게 어깨를 토닥여주니 켄마는 내 품에서 머리를 비비곤 자리를 잡았다. “켄마.” 일어나야지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이미 켄마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냥 켄마가 일어나고 싶어질 때까지 나는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응.” 아직 품에 있던 켄마가 대답했다.

“주먹밥 해놨어.”

“응….”

“그리고 다 먹으면 디저트도 먹자.”

“…뭐….”

“판나코타.”

  그 말에 켄마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켄마의 눈이 ‘진짜?’라고 말하고 있어서 나는 그게 너무 귀엽고 웃겼다. “사왔어?” 그렇게 말하는 켄마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켄마의 눈이 더 커졌다. 아, 귀여워. 이런 표정을 보기 위해 더운 날에도 불 앞에 섰구나 싶어서 나는 켄마를 한번 꽉 끌어안았다. 켄마가 얼른 내 볼에 뽀뽀했다.

“밥 먹자.”

“구웠어?”

“음…, 판나코타 만들 때 너무 더워서 주먹밥은 그냥 밥만 쌌는데….”

  구워줄까? 나는 켄마를 위해서라면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럼 쿠로 덥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그냥이 오늘은 더 좋을 거 같아.”라고 에둘러 먹고 싶지만 그렇게 먹진 않아도 된다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나는 그럼 그걸 모른 척 받아주면서 “그래? 다행이다. 대신에 좀 이따 판나코타 먹자.”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켄마가 좋아도 확실히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니까. 할 수 있는 것과 귀찮은 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응.”

  아직 켄마는 이불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까 옷장에서 내 속옷을 꺼낼 때 같이 꺼냈던 옷을 켄마에게 입혀주었다. 아직 몽롱한 켄마는 내가 입혀주는 대로 입었다. 속옷까지 입혀주고 나서야 켄마를 이불에서 빼내고 나는 켄마를 들어 화장실 앞에 내려주었다.



켄마가 손을 씻고 나왔을 땐 이미 식탁에 주먹밥이 올라와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늘 이렇게 인사하고

“잘 먹을게, 쿠로. 고마워.”

라고 말하며 먹는 건 켄마였다. 나는 늘 그렇게 나를 지칭해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켄마의 인사법이 좋았다. 앙, 일어나자마자 먹는 거라 식욕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켄마는 오늘따라 크게 입을 벌려 주먹밥을 물었다. “아이구, 잘 먹는다.” 그렇게 말했더니 켄마가 조금 불퉁하게 보다가 다시 마저 밥을 먹었다. 나는 이제야 괜히 불안해서 얼른 컵에 물을 따라주곤 천천히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을 좀 일찍 먹었구나. 나는 어쩌면 켄마가 배고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웬일이지, 나는 오늘 그렇게 배고프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는지 켄마가 나를 보았다.

“그런 것 치곤 지금 주먹밥 3개 째 아냐?”

“…그런가?”

머쓱해져서 어깨를 올렸더니 켄마가 따라서 어깨를 올렸다가 푸흐, 웃었다.

“어제 너무 간단하게 먹었지.”

“응.”

“그럼 오늘 저녁은 좀 푸짐하게 먹을까?”

“아니.”

“왜? 더워서?”

“너무 많이 먹으면 움직일 때 더부룩해.”

  그 말에 담긴 뜻을 알고 나는 “어머,어머.”라고 말하며 오버했다. 켄마는 그런 나에게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난 그런 표정을 숨김없이 지어주는 켄마가 웃겨 깔깔 웃다가 사례가 들렸다. 켄마가 얼른 컵을 내밀었다. 그렇게 서로 웃으면서 점심을 먹고 이제 대망의 디저트 차례였다. 켄마는 잘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냉동실에서 꺼내 컵까지 차가워진 판나코타 위에 아까 식혀두었던 산딸기 잼을 퍼 담고 그 위에 산딸기와 애플민트로 장식했다.  

 “이제 봐도 돼.”

  내 말에 켄마는 제 눈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식탁을 바라보았다. “우와.” 그렇게 작게 말하곤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쿠로가 만들었어?” 그 말에 나는 웃으며 “진짜로.”라고 대답했다. 켄마는 얼른 숟가락을 들었다. 나는 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판나코타를 찌를 듯 말 듯한 그 숟가락이 그대로 멈춰서 내가 사진 찍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먹어도 돼~.” 내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이 켄마는 얼른 컵을 끌고 가 가까이에 두고 숟가락을 푹 넣었다. 그리고 그걸 떠서 입에 가져갔다. 켄마의 눈이 잠시 커지더니 곧 가늘어졌다. 어깨가 올라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광대가 승천했다. 나는 이걸 차마 사진을 찍지 못하고 대신 내 눈에 고이고이 담아두었다.

“맛있어?”

“맛있어.”

“정말?”

“응, 쿠로 사랑해.”

“이럴 때만?”

“어젯밤에도 말해줬잖아.”

  윽, 그 말에 나는 반박하지 못하고 컵을 끌고 가서 내 몫을 먹었다. 음, 처음 한 것 치곤 잘 된 것 같았다. 확실히 젤리 푸딩과는 완전히 맛이 다르고 생크림이 들어가서인지 그냥 우유푸딩보다는 부드러웠다. 사실 3시간을 꼭 지키지 못해서 조금 덜 단단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오히려 이런 게 더 좋았다. 거기다가 산딸기가 상큼해서 자칫 밍밍할 수 있는 우유를 잘 보완했다. 물론 그 우유에 바닐라 향이 나는 게 가장 포인트였다. 그냥 우유와 생크림만 있었더라면 푸딩부분은 이미 넘어가버리고 입에 남는 끝 맛이 산딸기로만 끝나서 애매했을 텐데 바닐라 향이 사르르 녹아 풍미를 자아내고 산딸기 쨈과 함께 남아있어 내가 산딸기 잼을 먹은 게 아니라 산딸기 판나코타를 먹었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좋아, 괜찮네. 다음에도 만들까.”

“응!”

  아, 켄마가 얼른 대답했다. 나는 그게 좋아서 히죽 또 웃었다. “다음엔 블루베리도 해볼까? 블루베리도 잘 어울릴 거 같지 않아?” 그러자 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생각을 했다. “응, 괜찮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켄마는 한 입 더 물고는 또 이야기했다. “다음엔 나도 할래. 배워도 돼?” 켄마와 내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뭔가를 배우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기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울래?”

“응. 나중에 해서 쿠로도 줄게.”

“오, 좋아~.”

“…잘 못하려나. 어려워?”

“아니, 전혀. 오히려 켄마가 나보다 미각이 뛰어나니까 더 잘할 걸?”

“음…….”

  그렇게 말하고 켄마는 고개를 기울였다. 호로록, 나는 남은 판나코타를 싹싹 긁어내 컵에 입을 댔다. “후, 덥다.” 켄마가 컵을 꼭 쥐면서 말했다. “이번 여름이 너무 더운 것 같지.” 나도 켄마의 말에 공감하며 거실의 에어컨을 켤까 고민했다.

“에어컨 켤까?”

“아니, 괜찮아.”

“덥다며….”

“음…, 다시 방에 들어갈 거니까.”

  켄마는 나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켄마가 배고팠다고 말하는 게 식욕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여간 저런 표정도 예뻐서는. 내가 오히려 으, 하며 인상을 찌푸린 얼굴을 잠시 하고 얼른 접시를 싱크대에 두었다. 켄마는 얼른 긁어 먹더니 곧 컵을 들고 싱크대로 왔다. “물에만 담가. 좀 이따 내가 할게.” 으이구, 정말. 나는 고무장갑을 끼던 손을 멈추고 다시 벗어야만 했다. “까먹지 말고 하는 거다.”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내밀었다. 켄마의 손이 내 볼에 올라왔다.

…방에 들어가면 에어컨을 다시 켜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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